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역사적 위인들

  • DKLaw 

너무 당연한듯 욕을 먹고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과연 그렇게 욕을 해야 했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억울한 역사적 인물은 누가 있을까요? 오늘 죽을 자들을 위한 변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폰티우스 필라투스

개신교에서는 본디오 빌라도라고도 하는 폰티우스 필라투스입니다.

개신교 사도신경에서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표현되어 있어서 마치 예수를 괴롭힌 사람이 이 폰티우스 필라투스라고 사람들이 오해하기 딱 좋죠.

물론 현재 천주교의 사도신경에서는 ‘본디오 빌라도의 통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사’라고 하여 본디오 빌라도가 재판장에 불과하였음을 분명히하려고는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건 굳이 당시 재판장의 이름은 사도신경에 나오는데, 당시 진짜로 예수를 무고했던 유대인의 종교지도자들은 그 이름이 안 나옴으로써 본디오 빌라도는 종교지도자들을 대신하여 지나치게 욕을 많이 먹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사도신경을 읊는 기독교 인구가 20억명은 될 터이니, 일주일에 한번 본디오 빌라도는 20억번의 욕을 먹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의 사형 재판 과정을 보면 당시 로마 사법제도의 우수점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당시 로마는 설령 로마시민권을 가지지 않은 자라도 사형에 해당하는 재판은 속국의 미개한 인민재판에서 보호되도록 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에 대한 사형은 유대교의 종교지도자들이 할 수 없었던 것이죠.

물론 바울처럼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로마 본국에 항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서는 차별 받는 것이겠지만,

예수처럼 로마시민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도 로마의 우수한 사법제도를 배운 본디오 빌라도로부터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당시 미개했던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엄청난 발전이었을 것입니다.

참고로 이러한 형벌의 종류에 따라 재판 권한을 제한하는 것은 과거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지방 사또는 인체를 구금하는 권한이 없었다고 합니다. 오로지 관찰사에게만 그러한 권한이 있었다고 하네요. 따라서 춘향전에서 굳이 변사또의 죄목을 찾는다면 월권행위에 의한 인신구속이라고 합니다. 관기에 불과하던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고 한게 어떠한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둘째로, 빌라도는 예수에게 범죄 혐의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예수를 무고하던 종교지도자들은 그저 인민재판으로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느데 비하여, 빌라도는 도대체 예수가 어떤 죄목에 해당하는지를 명확히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는 로마의 사법체계를 배웠던 헤롯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흥 종교를 만들었다는 것이 죄가 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한 것이죠.

셋째로 빌라도와 헤롯은 서로 자기네 관할이 아니라고 떠넘겼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가 갈릴리 사람이라고 헤롯에게 떠넘겼고 헤롯은 예수의 호적이 유대에 있다고 하여 빌라도에게 떠넘겼습니다. 자기들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면 자신에게도 인사상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한 것이죠.

넷째로, 그래서 겨우 빌라도가 생각해낸게 내란죄입니다. 예수에게 ‘유대인의 왕’이라고 선언한 것이죠. 로마의 속국에 불과한 유대에서 로마의 허락없이 스스로를 유대의 왕이라고 칭했다면 이는 내란죄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사형이 판결될 수 있다고 본 것이죠.

결과적으로 빌라도는 예수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우긴 했지만, 과연 재판장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지금도 재판관들은 여론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죠. 이를테면 촛불시위를 광화문에서 지속적으로 하면 헌법재판소 재판관 입장에서는 여론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빌라도는 그 정도의 죄 밖에 없다고 보아야 겠지요.

2.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예수와 마찬가지로 죄 없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입니다. 실제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기소된 죄명은 다 철저한 날조였다고 하죠?

기소된 죄명은 다들 부인되고 그나마 근친상간 죄명이 유일하게 인정되었다고 하는데, 이 근친상간 역시 조작된 진술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적폐정부인 프랑스 부르주아 기득권 정부는 자신들의 정적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제거하기 위해 온갖 날조를 다 했었죠.

실제로는 검소하고 누구보다도 백성을 사랑했던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다이아몬드 사기사건을 누명 씌어 마리 앙투아네트를 사치의 대명사로 만들었었습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을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는 날조도 했었죠.

심지어 과거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이 실리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이는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 편집자들이 좌편향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프랑스 대혼란시기의 실상을 비교적으로 객관적으로 보여준 ‘두 도시 이야기’와 같은 책의 서술은 최대한 감추려고 노력했었으니까요/

3. 고조다

고구려 장수왕의 아들이자 문자명왕의 아버지인 사람입니다.

못난 사람을 일컫는 ‘쪼다’라는 말이 이 사람을 두고 생긴 거라는 말이 있죠.

만약 그 말이 사실이면 사실 고조다라는 분은 참 억울할 것입니다.

아버지인 장수왕이 오래산게 자기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렇다고 하여 아버지를 죽일 수도 없잖아요.

물론 백제의 시조나 고구려의 시조도 모두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인하여 패배한 사람이 새롭게 나라를 개척한 것이라고 하죠.

하지만 이미 고조다의 시절에는 어느 곳을 가든 다들 나라를 세웠으니

다른 곳을 개척할 곳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세대가 바로 고조다와 같은 상황 아닌가 싶습니다.

586운동권 세력이야 꿀을 있는대로 빨았지만, 그 다음 세대들은 평생 결핍에서 벗어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586 운동군 세력은 적폐세력답게 자신들의 노후를 위하여 복지 예산을 팍팍 늘림으로써 후배세대들을 갉아먹으려는 모든 준비를 마쳤죠.

후배세대들은 아무런 기회도, 부도 가지지 못했는데 평생 586 세력을 부양해야 하는 무게에 눌리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586 세대를 고려장 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는 우리 세대에 대해

먼 훗날 역사는 ‘쪼다 세대’라고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외에 이완용 등도 꽤 악의적 날조에 의해 필요 이상의 욕을 먹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들을 위한 변명은 꽤 담론이 많았으므로 여기에서는 줄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