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에 대한 발칙한 상상, 그리고 바가바드기타와 싯다르타 대하여(The Origin of Born Again)

  • DKLaw 

도마복음서를 지었다고도 알려진 사도 도마는 전승에 따르면 인도로 갔다고 합니다.

예수가 도마보고 인도로 가라고 했다고 하죠.

최소한 예수가 인도의 존재를 알았다는 뜻입니다.

영화 맨프롬어스도 예수가 인도에서 수행했다는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불자설이라고도 하는, 예수가 인도에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는 가설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교의 루돌프 자이델(Rudolf Seydel) 교수는 예수와 부처의 연관성에 대해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의 책에서 불교와 기독교는 최소한 50개의 스토리가 일치한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이슬람에서는 예수를 이사라고 표현합니다.

러시아의 종군기자였던 니콜라스 노토비치(Nikolai Notovich)는 티베트의 사원에서 ≪사람의 아들 중 최고, 성(聖) 이사의 거룩한 생애≫(이하 이사전)라는 책을 봤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노토비치가 주장하는 이사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요.

어찌되었건 예수의 가르침이 기존의 유대교의 경전과는 매우 다르기에, 예수가 인도의 영향을 받은건 아닌가 라는 의구심은 예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저는 예수의 사상은 불교보다는 힌두교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 이유는 바로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 때문입니다.

바가바드기타의 서문 부분입니다. 제일 높은 제사장을 뭐라고 하지요? 바로 두번 태어난 자라고 합니다.

힌두교의 비유적 표현 중 ‘두번 태어난 분’이라는 뜻은 브라만 제사장 중 가장 높은 계급을 뜻합니다.

자 그러면, 예수가 니고데모에게 했던 거듭난 자라는 뜻의 단서가 풀립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서 유대교의 영적 지도자입니다. 따라서 유대교의 교리에 대해서는 통달합니다.

당시의 유대교의 교리상 ‘두번 태어난 자’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니고데모는 예수에게 그 뜻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예수는 기존의 유대교 철학 테두리 안에서만 배운 것이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예수가 말한 ‘Born Again’이 흰두교에서 나왔다고 한다면 예수의 원래 말뜻이 이해가 됩니다.

즉, 구원받을 자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예정설의 초기 버전이 되는 것이죠.

물론 예수 이후의 기독교는 바울에 의해 세련되어지면서 폐쇄성을 버리기에 예수가 말한 구원 계급론은 이후 ‘진정한 크리스챤’으로 해석되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바가바드기타라는 책은 여러모로 재미가 있는 책입니다.

바가바드 기타는 크샤트리아인 아리주나가 브라만 계급인 크리슈나에게

왜 자기가 자기의 친족들을 죽이는 전쟁을 해야만 하냐며

한없이 원망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대하 크리슈나의 대답은 바로

인간으로서 태어나면서부터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다르마’입니다. 니가 타고난 계급이 크샤트리아에 불과하니 브라만이 까라면 까는게 맞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르마’를 잘 수행하면 ‘카르마’가 쌓여 사마디(삼매경)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다소 폭력적일 수 있는 이러한 경전의 내용이 그 당시 인도 계급 사회에서는 주류 철학이었습니다.

그렇게 타지면 고타마 싯다르타가 불교를 만든 이유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싯다르타는 왕족인 크샤트리아 계급으로서 평생을 브라만의 명령을 받아야만 하는 운명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종교를 바꾼다면 어떨가요?

힌두교의 계급 체계를 깨부술수 있다면 싯다르타는 자신의 다르마를 수행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싯다르타는 동쪽으로 가서 불교를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힌두의 개념인 ‘부디’를 차용하여 깨달음의 상태인 ‘붇다’가 되면

반열(니르바나)에 이를 수 있다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면 기존 체제에 순응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이다.

즉, 싯다르타의 수행은 왕후장상 영유종호! 라는 저항정신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싯다르타와 비교적 동시대에 살았던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자기가 아무리 똑똑해도

플라톤 아카데미가 플라톤 친족에게 상속된거 보고는 더러워서 플라톤과는 결이 다른 철학을 새로 만들었다고 하잖아요.

장자 상속 체제에서 가업을 상속받지 못하는 차남 이하는 ‘카데트’가 되어 집을 떠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야만 자기가 성공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즉, 처음부터 힌두의 세계에서 살아야만 했던 싯다르타는 힌두 철학이 미워서 동쪽으로 가 불교를 만들었고,

힌두의 철학이 신선했던 예수는 서쪽으로 가 힌두의 개념을 차용했던 것 아닐까요?

거듭남에 대한 발칙한 상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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