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미술에 대한 변명

  • DKLaw 

누구나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E. 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어보자

각 시대별로 성취했던 미술적 기교를 설명하여 그 기교가 미술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설명해주는 이 책은 서양 미술사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매우 탁월한 책이다.

이집트 시대에 얼굴은 정면 모양, 몸은 측면 모양을 그린 것은 그 당시로서 사람을 표상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미술적 기교였고, 특정 구도에서 바라본 모양을 보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미술이 아니었음을 설명하는 것은 독자에게 많은 인사이트를 준다.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서야 어느 한 시점에서 바라본 물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린 것은 크나큰 발전이라고 곰브리치는 이야기한다. 드디어 그리스 시대에야 어느 인물의 발 모습을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곰브리치는 누적적 미술지식이 역사의 흐름이라는 전제하에, 이전의 기법을 사용한 것은 후퇴했다는 주장을 한다.

중세시대의 그림은 그리스 미술에서 후퇴하여 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사’한 것이 아니라 다소 현실과 동떨어지게 그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세시대의 그림은 그 이후 시대인 르네상스 시대의 사실적인 그림과도, 그리고 그 이전인 그리스 로마 시대의 사실적인 그림과 조각과도 다르게 좀 엉성하고 유치하다. 인물들의 주위에 동그랗게 아우라를 그린 그림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중세시대의 그림 기법은 그리스 로마시대에서 후퇴하였을까? 그 시대는 미술 지식을 잃어버렸을까?

곰브리치가 제시한 삽화 중 130년 작품 <성전에서의 그리스도, 매사냥 놀이>를 보면 미술지식이 후회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성전에서의 그리스도, 매사냥 놀이 이미지 검색결과

위에 성경의 장면을 그리 장면은 사실적인 관찰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아래에 민중들이 사냥을 하는 장면은 사실적인 관찰에 기반한 그림이다.

곰브리치는 위의 성경 내용을 그린 장면을 사실적인 관찰 기법으로 그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아직 이탈리아의 ‘사실적인 관찰기법’을 도입하지 못했다고 설명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화가는 이미 사실적인 관찰기법을 알고 있고, 이미 과거부터 계승해 왔지만 성당에 납품하는 작품은 ‘추상적 관념’ 기법으로 그렸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아래에 민중들의 풍속화를 그린 것은 자신도 ‘사실적인 관찰기법’을 알고 있다는 일종의 데몬스트레이션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곰브리치는

이집트 -> 그리스 로마 -> 중세 -> 르네상스의 역사의 발전 속에서

사실적인 그림이 아닌 것에서 사실적인 그림으로 바뀌는 것이 발전이라는 틀에 갖혀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현대미술로 생각해보자. 기계의 발전으로 더 이상 사실을 사실대로 그리지 데에 있어서 기계를 따라가지 못한 인간은

‘인상주의’로 그리고 ‘추상주의’로 기조를 바꾼다.

즉, 사실적인 묘사가 꼭 미술사의 발전에 있어서 일방향만은 아니다.

이는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집트에서는 종교가 중요하였으므로 ‘보는 그대로’가 아니라 ‘종교적 관념’이 중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꼭 인물을 있는 그대로 그릴 필요가 없었다.

중세 시대 역시 비싼 미술품은 성당에 납품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술가들은 성경의 내용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떠한 성스러운 ‘감정’, ‘경외심’이지

어떠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감정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이후 모네 이후로 더 이상 미술이 현상 모사를 포기하는 현상에서도 똑같은 역사가 반복된다.

즉, 중세시대의 그림들이 비현실적이고 투박한 것은 그리스 로마시대와 달리 다시 그림을 ‘관념의 표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곰브리치는 중세시대를 ‘다크에이지’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곰브리치는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생각을 자신의 책에 쓰기도 한다.

곰브리치의 「현대미술사」 164쪽은

“이집트 인들은 대체로 그들이 존재한다고 ‘알았던’ 것을 그렸고, 그리스 인들은 그들이 ‘본’것을 그린 반면에 중세의 미술가들은 그들이 ‘느낀’것을 그림 속에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이다” 라고 쓴다.

따라서 굳이 중세를 다크에이지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중세시대에도 성당에 납품하는 고가의 미술품이 아닌 일반 민중들의 그림에는 그리스 로마시대의 그림 기법이 그대로 유지되었을 수 있다.

전통적 도구를 사용하는 미술 분야 중 현대 미술이 주로 추상적 관념을 그리는 것으로 바뀐 것을 보면, 중세의 미술도 후퇴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현대 미술 중 컴퓨터 그래픽은 현재 ‘사실적인 관찰’ 쪽으로 집중하는 듯하다.